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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발매한 대표곡 '커먼 피플(Common People)'을 약 15만명이 떼창한 장면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줄리언 템플이 연출한 다큐 영화 '글래스턴베리'(2006) 주요 장면 중 하나다. 이로 인해 글래스턴베리에 대한 로망을 품은 국내 브릿팝 밴들이 한 둘이 아니다.
펄프가 '한국의 글래스턴베리'로 통하는 '2025 인천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통해 결성 47년 만에 첫 내한한다. 오는 8월 1~3일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리는 이 축제의 두 번째 날 헤드라이너로 나선다.
펄프 기타리스트 마크 웨버(Mark Webber)는 28일 국내 언론과 서면 인터뷰에서 "이번이 처음 한국을 방문하는 거라 솔직히 어떤 무대를 마주하게 될 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다만 "이렇게 먼 곳에서도 저희 음악을 들어주셨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기만 해요. 2012년 처음 멕시코에 갔을 때랑 비슷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당시엔 아무런 기대도 없이 갔는데, 어마어마한 아레나에서 공연하게 됐고 팬들의 열기가 정말 대단했다"고 설렜다.
펄프는 프런트맨 자비스 코커(Jarvis Cocker)를 중심으로 1978년 결성했다. 오랜 무명 생활을 겪다가 오아시스, 블러, 스웨이드 등과 함께 1990년대 브릿팝 전성기를 이끌었다. 여기에 펄프를 더해 브릿팝 팬들은 '브릿팝 4대장' 등 다양한 수식으로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펄프는 '커먼 피플' 외에 '디스코(Disco) 2000', '베이비스(Babies)' 등 히트곡을 내며 1990년대 유럽 록 신에 큰 족적을 남겼다. 2010년대 들어 재결성과 해체를 또 겪었고, 2023년부터 완전한 꼴을 갖춰 투어를 이어오고 있다. 다만 그 해 봄 초창기 멤버인 베이시스트인 스티브 매키가 세상을 먼저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앞서 코커는 지난달 24년 만의 새 앨범 '모어(More)' 발매를 기념해 영국의 권위 있는 음악잡지 '모조(Mojo)'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매키가 세상을 떠난 것이 이 음반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유한성과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여전히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커먼 피플'이 실린 명반인 정규 5집 '디퍼런트 클래스(Different Class)'를 통해 정식으로 펄프의 녹음에 참여한 웨버도 2023년의 공연들이 정말 큰 반응을 얻었다면서 "그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다시 음악을 만들어보는 건 어때?'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고 기억했다. "저도 꽤 오랫동안 곡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가능할지 의문이었는데, 막상 시작하니 그 과정이 정말 즐겁고 그리웠단 걸 깨달았어요. 예전엔 앨범 녹음이 너무 오래 걸렸던 기억 때문에 망설이기도 했는데, 이번엔 제임스 포드(James Ford)의 멋진 프로듀싱 덕분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3주 만에 앨범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자신과 코커 그리고 캔디다 도일(Candida Doyle·키보드) 닉 뱅크스(Nick Banks·드럼)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펄프 사운드가 흘러나오는데,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는 분석하려 들기보다는 흐름에 맡겼다고 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곡들이 만들어졌고, 오히려 그 점이 마법 같다고 느꼈죠. 이전보다 더 내성적이고 성숙하다는 평을 들을 때면, 그건 아마 우리가 인생의 다른 지점에 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웨버는 이번 앨범에 실린 곡 중 '슬로 잼(Slow Jam)'를 펜타포트에서 꼭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고, 연주할 때마다 즉흥적인 흐름이 있어서 무대 위에서의 즐거움이 더 크거든요. 처음 펄프를 접하는 분들에게도 우리가 지금 어떤 감정으로 음악을 나누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전해질 수 있는 곡이라 생각해요."
반면 '커먼 피플'은 발매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불리는 노래다. 이 곡이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는 웨버는 "카페나 라디오에서 우연히 이 노래가 나올 때마다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고, '우리가 어떻게 이런 곡을 만들었을까'하고 감탄하게 된다"고 신기해했다. "어떻게 그런 곡이 탄생했는지, 지금도 가끔은 믿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그만큼 놀라운 경험이었고, 펄프의 이름을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며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꾼 노래이기도 하니까요. 정말 감사한 노래예요."
웨버는 지난 2004년 이미 한국을 개인적으로 방문한 경험이 있다. 당시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EXiS)' 측이 그를 초청했다. 당시에 영국의 역사적인 아방가르드 영화들을 소개했다. 마침 현재도 이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데 펄프가 이번에 내한하는 날이 폐막일이라 프로그램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영상 작업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또 한국의 전설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일상 속에서 한국과 가장 가까운 연결고리는 아무래도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토트넘 홋스퍼에 활약 중인 '캡틴' 손흥민이다. 웨버는 "팬으로서 손흥민 선수에 대한 애정이 있습니다. 이번 공연에 초대하고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펄프 공연 다음 날 서울에서 친선경기(토트넘 VS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열리더라고요. 그 경기도 보러가고 싶다"고 했다.
8년 만인 작년에 내한한 스웨이드가 오는 9월 열리는 '부산국제록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다시 나서고, 오아시스가 16년 만인 오는 10월 경기 고양 고양종합운동장에서 공연하는 등 국내에서 브릿팝 리바이벌 붐이 일어나는 중이다. 펄프 첫 내한공연까지 더해지면서 국내에선 올해가 브릿팝의 새로운 원년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웨버는 "1990년대 중반, 저희가 음악을 하던 그 시기는 정말 특별한 에너지가 넘치던 시기였어요. 물론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전 세계적으로 퍼질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지만, 다시금 그 시절의 밴드들이 팬들 곁으로 돌아오는 걸 보며 음악이 가진 힘을 실감하게 된다"고 했다. "과거의 팬들에게는 그 시절의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지금의 세대에게는 새롭고도 낯선 세계를 접하는 창구가 되겠죠. 세대를 넘나드는 연결, 그게 아마 브릿팝이 지금 다시 회자되는 이유 아닐까요?"
그 가운데서도 펄프는 늘 실험적이고, 때론 비주류적인 감성을 존중해왔다. 개인적으로는 실험영화나 예술영화에 많은 관심이 있다는 웨버는 "그런 시도가 우리 음악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고 자부했다.
아울러 나이가 들고, 각자의 삶을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변화도 있다.
"과거에는 펄프가 우리 삶의 전부였고, 그 사이클 속에서 살았죠. 곡 쓰고, 녹음하고, 투어 돌고. 하지만 지난 20년간 각자의 삶을 살아오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고, 가족이 생긴 멤버들도 있어요. 이젠 우리가 성장했고, 우리 음악을 듣는 팬들도 같이 나이를 먹었죠. 그래서 이번 앨범에는 그만큼의 성찰과 내면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