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맵 따라왔냐고요?"… 청년들 '절밥 오픈런'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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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거지맵 따라왔냐고요?"… 청년들 '절밥 오픈런' 진짜 이유

연화사 등 3곳 '청년밥심'운영…가성비 넘어 '사찰식 환대'에 매료
혼밥족부터 유학생까지… SNS 탄 ‘힙불교’ 사찰음식 인기도 영향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연화사에서 진행된 청년밥心(심)에서 학생들이 공양간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청년밥心은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운영하며 인근에 대학교가 있는 사찰들이 학기 중 주1회 점심 공양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2026.04.28. [email protected]
[나이스데이] "거지맵 보고 왔냐고요? 친구들이 집밥 같다고 해서요."

지난달 28일 점심. 서울 동대문구 대학가 인근 대한불교조계종 연화사 경내. '청년밥心' 현수막 아래 가방을 멘 대학생들이 줄을 길게 늘어섰다. 정오가 되자 예약자 명단에서 이름을 확인한 학생들이 차례로 공양간에 들어섰다. 가방을 내려놓고 식판을 든 청년들의 표정에는 설렘이 읽혔다.

이날 연화사를 찾은 대학생은 100여명. 사찰이 한번에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에 달했다.

공양간에는 밥과 국은 물론 콩나물무침, 취나물무침, 고사리볶음, 표고탕수, 두부전골 등 10여 가지 반찬과 사과, 오렌지 등 후식까지 준비돼 있었다. 식사 후 마실 보이차도 제공됐다.

최근 연화사가 저렴한 식당 정보를 공유하는 애플리케이션 '거지맵'과 함께 언급되며 주목받고 있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청년들의 목적은 단순히 '공짜 밥'에만 있지 않았다.

[서울=뉴시스] 한이재 기자 = 28일 서울 동대문구 연화사에서 대학생들에게 제공된 점심 모습 2026.04.30. [email protected]

'경제 프레임'에 가려진 '환대'의 본질

현장 지원을 하고 있는 유철주 조계종사회복지재단 위원은 "우리는 '거지맵'에 정보를 올린 적도, 홍보한 적도 없다"며 프로그램 취지가 경제적 빈곤으로만 왜곡된 시각에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유 위원은 "2024년 (청년밥심) 기획 당시만 해도 지금 같은 고물가·고유가 상황은 아니었다"며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들이 집밥의 온기를 느끼고, 사찰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하자는 '힐링'이 본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재단 내부에서는 경제적 어려움만을 부각하는 외부의 시선이 오히려 청년들의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할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사찰 측은 참여 학생들에게  생활 형편이나 방문 이유를 일절 묻지 않는다. "맛있게 드세요",  "많이 드세요"라고 건네는 따뜻한 인사말이 전부다. 그저 말없이 따뜻한 밥상을 내어주는 '무조건적인 환대'가 이 곳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연화사에서 진행된 청년밥心(심)에서 학생들이 공양간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청년밥心은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운영하며 인근에 대학교가 있는 사찰들이 학기 중 주1회 점심 공양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2026.04.28. [email protected]

"거지맵 알지만 온 이유는 따로 있죠"

현장에서 만난 청년들은 '절밥'을 찾는 이유가 단순히 식비를 아끼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어떻게 알고 왔냐는 질문에 친구 소개나 학교 주변 현수막, SNS를 꼽는 응답이 많았다.

경희대 식품영양학과에 재학 중인 미얀마 유학생은 "'거지맵'은 알고 있지만 이곳은 학생회 공지를 통해 알게 됐다"며 "사찰음식을 먹고 싶어서 길거리에 있는 현수막의 QR코드를 스캔해 신청하고 오늘 핀란드 친구와 함께 왔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과 릴스를 보고 왔다는 한 학생은 "학교 식당도 있지만 여기는 무료이기도 하고 수업 끝나고 바로 올 수 있어 좋다"고 답했다.

인근에서 자취하는 경희대 4학년 여학생들은 "사찰음식이라 오히려 더 좋다"고 했다. 한 학생은 "친구 소개와 현수막을 보고 왔다"며 "고기가 없어도 반찬 종류가 많고 맛있어서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혼자 살면 제대로 된 밥을 챙겨 먹기 힘든데, 여기 오면 나물 위주의 건강한 식단을 먹을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연화사 주지인 묘장 스님이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연화사에서 진행된 청년밥心(심)에서 학생들에게 배식을 하고 있다. 청년밥心은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운영하며 인근에 대학교가 있는 사찰들이 학기 중 주1회 점심 공양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2026.04.28. [email protected]

조용히 즐기는 제대로 된 한끼… '힙불교'와 '집밥'의 결합

이날 공양간 풍경은 대학가 식당과는 사뭇 달랐다.

혼자 절을 찾은 학생들은 익숙한 듯 이어폰을 꽂고 오롯이 자신의 식사에만 집중하며 사찰의 고요함을 즐겼다. 반면 친구들과 함께 온 학생들은 도란도란 낮은 목소리로 음식 맛을 품평하며 '사찰식'을 즐겼다. 시끌벅적한 대화나 낯선 이들과의 교류는 없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이 주는 평온함을 누리는 모습이었다.

사찰 음식을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소비하는 경향도 뚜렷하다. SNS와 숏폼 콘텐츠를 통해 불교 문화가 '힙(Hip)'하게 부상하면서, 청년들에게 절밥은 가난의 상징이 아닌 채식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

묘장 스님(연화사 주지)은 "부처님 전에 올리는 음식이라 원래 건강에 좋은데, 여기에 '엄마가 해준 밥처럼 맛있다'는 입소문이 많이 났다. 절밥이 맛있어서 계속 간다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물가 영향이 없진 않겠지만, 사찰 음식 자체가 주는 고유한 매력 때문에 다시 오는 학생들이 많다"며  "최근 선재스님이 방송(흑백요리사2)에 출연해 사찰음식이 유명해진 것도 학생들이 오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연화사에서 진행된 청년밥心(심)에서 학생들이 공양간으로 입장하고 있다. 청년밥心은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운영하며 인근에 대학교가 있는 사찰들이 학기 중 주1회 점심 공양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2026.04.28. [email protected]

이처럼 절밥을 찾는 청년들의 발걸음은 단순히 식사를 아끼려는 고육지책으로만 보기 어렵다. 건강한 식단, 사찰 문화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누구도 눈치 주지 않는 공간에서 얻는 정서적 평온함이 맞물린 결과다. 청년들은 지금 '거지앱'이 가리키는 싼 밥집이 아니라, 자신을 귀하게 맞아주는 공간을 찾아 줄을 서고 있다.

재단은 '청년밥심'을 연화사(매주 화요일), 상도선원(격주 목요일), 개운사(격주 금요일)에서 정기적으로 운영 중이다.

묘장스님은 수용 인원 증대 계획에 관해서는 "인원을 다 수용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일관되게 운영해야 봉사자들과 음식 준비하시는 분들도 어렵지 않게 일할 수 있다"며 "우선은 이 정도로 운영해 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