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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듀스가 K-팝이 절정을 찍고 있는 지금 과거인 동시에 현재, 미래가 된다. 선형적(線形的) 삶에서 시공간의 뫼비우스 띠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팀의 유산과 동시대성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태도가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위상기하학적 성질을 띠며 고유성을 빚어내고 있다.
듀스는 1993년 4월 1집 '듀스(Deux)'로 데뷔한 이후 1995년 7월 해체했다. 팀 활동을 끝낸 이후에도 우정, 음악 협업을 이어간 두 멤버의 건설적인 발전을 위해 스스로 내린 결단이었다.
이 팀은 '나를 돌아봐' '굴레를 벗어나' '우리는' '여름 안에서' 등의 히트곡을 내며 불과 2년의 활동으로 시대를 풍미했다. 특히 2집 '듀시즘'(1993)과 3집 '포스 듀스'(1995)는 1990년대에 나온 대중음악 명반에 포함된다.
K-팝 인기의 화룡점정으로 통하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매기 강 감독은 듀스,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삽입해 K-팝의 뿌리인 이들에게 헌사를 바쳤다.
그런데 듀스는 단지 과거의 추억이 아니다. 듀스의 반쪽인 이현도가 20년 만인 올해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듀스 4집 발매를 준비 중이다. 이렇게 듀스는 단지 박제된 유산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전설이자 K-팝의 현재다. 올해는 듀스의 또 다른 반쪽인 김성재(1972~1995)의 30주기이도 하다.
그렇다면 듀스의 미래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이현도가 공동 대표로 있는 와이드 컴퍼니(WA:ID COMPANY)가 이를 가늠케 한다. '빌딩 왓츠 넥스트 인 뮤직(Building what's next in music)'을 슬로건으로 내건 이곳은 '글로벌 360° 뮤직 컴퍼니'를 표방한다. 음악, 지식재산권(IP), 테크놀로지, 팬 플랫폼, 라이브 공연을 통합한 구조다. 이현도가 현재 와이드 컴퍼니에서 총괄 프로듀싱을 맡아 보이그룹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시대에서 찾아보기 힘든 듀스의 멋 DNA를 장착해 K-팝의 뿌리를 계승하는 동시에 기존 K-팝 신에선 찾아보기 힘든 스타일의 팀이 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방탄소년단 팬덤 '아미(ARMY)' 등 현재 수많은 아이돌 팬덤의 기반을 닦은 '듀시스트'(DEUXIST·듀스 팬들)의 심장도 다시 두근거리는 중이다. 듀시스트는 앞서가는 지성적 팬덤이었다.
다음은 최근 서울 강남구 이현도 작업실에서 만나 그와 나눈 일문일답.
-최근 듀스 정규 4집 얘기가 큰 화제가 됐습니다. 듀스 30주년이던 지난 2023년부터 진행해오신 프로젝트로 알고 있는데요. 발매하는 데 고민이 길어진 이유가 있습니까?
"음원 복원은 완성도가 괜찮았는데 영상 복원이 제 성에 안 찼어요. 음원은 지금 당장이라도 낼 수 있는데, 영상까지 완성해서 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 늦어졌습니다. AI를 비롯해서 기술이 일취월장하고 있으니까, 하루 빨리 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듀스 음악이 워낙 새로웠고, 이번에도 기대에 못지 않은 음악들 들려주실 거라 믿는데 이번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요?
"제 삶의 목적은 '이 순간에 제가 하고 싶은 걸 그냥 하는 것'이에요. '이제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게 된 거죠. 작곡을 하다 멈춘 것, 녹음을 하다 멈춘 것 또 유실된 것들이 꽤 있거든요. 또 제 파트너인 성재가 노래할 때에 목소리 특징이 있잖아요. 그런 특성은 제가 100% 알고 있고 감독을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겠죠."
-듀스는 뉴잭스윙, 일렉트로 힙합 등 앞서가는 음악을 들려주셨는데요. 듀스의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가시는지 변주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디어의 출발은 듀스가 3집으로 멋있게 해체를 했는데, 해체를 하지 않고 또 준비해서 4집이 나왔으면 어땠을까였어요. 제 머릿속에만 있었던 걸 구현하는 과정인 거죠. 30년의 간극 없이 저 역시도 AI에 포함된 하나의 소재로서, 요소로서 듀스 3집 다음에 바로 4집이 나온다는 설정이죠. 2025년, 1999년 계산 없이 단순하게요. 제가 프로듀서로서 작품자로서 30년 이상 음악을 해왔으니, 태도나 방식은 달라질 수 있죠. 그런데 듀스의 절반 중 하나는 저인 거잖아요. 그래서 듀스의 멤버로 지금까지 계속 영역을 넓히면서 살아온 거 같다는 생각이 요즘 문득 더 들었어요. 결국 듀스 4집의 음악도 듀스가 듀스 것을 하는 겁니다."
-저희 같은 세대에겐 향수랑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현 세대한테는 진짜 듀스를 제대로 처음 만나게 해주는 작업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듀스를 모르는 세대에게 '듀스 그대로의 색채와 스타일'을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도 물론 있습니다."
-지금 세대는 어떤 프리즘을 통해서 듀스를 전달받아 온 거잖아요. 이번 듀스 4집은 듀스를 생짜로 경험하게 해 젊은 사람들도 '듀스 세대'로 만드는 기적을 선사할 거 같은데요.
"그렇게 거대하게 생각은 안 해봤습니다."
-또 작년에 뉴진스가 뉴잭스윙을 들고 나왔을 때 젊은 청취자들이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듀스도 회자되면서 이미 화제가 됐죠. '이미 이렇게 멋있는 장르를 해온 팀이 우리에게 있었다'면서 뿌듯해하더라고요. 그런 가운데 새 앨범을 내시는 게 부담은 되지 않으세요?
"부담은 없어요. 부담이 있을 게 뭐가 있어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하고 싶어졌다는 게 가장 중요하죠. 듀스가 듀스를 하고 싶어져서 듀스를 하는 상황이거든요. 그 이외에 다른 말이 뭐가 필요하겠어요. 성재 동생과 어머니에게도 말씀을 드렸고요."
-이전까지는 듀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나요?
"반대였죠 세상에 등을 돌린 채 살고 싶었던 때도 있었고요. 누가 봐도 뻔한 얘긴데 못하고 있는 얘기들도 있잖아요. (김성재 사망과 관련) 판결을 원망하면서 살기도 했고요. 그래서 세상을 외면하고 등을 돌리고, LA에 14년 있기도 했죠. 2025년이 돼서야 스스로 원해서, 스스로가 하고 싶어져 드디어 주사위를 던진 거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제 생각도 바뀌면서 하고 싶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 것 같아요. 특별한 큰 계기는 없어요."
-정말 운명 같은 게 올해가 성재 씨 30주기 잖아요. 성재 씨가 세상을 떠난 뒤 '나는 절뚝이며 살아간다'고 말씀하셨던 게 더 와 닿는 시기입니다.
"30주기는 계산을 안 해봤거든요…. (듀스로 다시 활동을 하고자) 생각이 바뀐 이유 중 하나는 성재의 멋있는 모습을 부각하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더 이상 '내가 외면하고 등 돌리지 말자'고 생각한 거죠. 11월만 되면, 모든 매체가 그 안타까운 일(김성재 사망)을 비극으로만 자꾸 얘기해요. 그래서 전 11월엔 TV를 안 봅니다. 그런데 이젠 성재의 제일 빛나고 멋졌던 순간을 제가 더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말씀주신 것처럼, 이렇게 멋있는 듀스 같은 팀을 어둡게만 기억한다는 것이 우리 음악 팬들에게도 불행한 일 같아요. 현도 씨께서 듀스의 음악적 멋을 담당하셨다면 성재 씨는 스타일적 멋을 담당 하셨잖아요. 그 조화가 진짜 듀스의 멋인데 현도 씨께서 보시기엔 성재 씨의 멋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신장도 좋고 또 옷도 소신 있게 잘 입었죠. 지금도 음악업계 분들은 물론 디자이너, 패션 에디터 분들을 만나면 성재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의 도움으로 이번 4집 성재에 대한 패션도 고민하고 있어요. 성재가 남겨놓은 유산에서 영감을 받아서 구현하는 후배들도 여전히 있으니까요."
-지금은 현도 씨, 성재 씨처럼 친구이면서 같은 팀 동료인 관계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그래서 두 분이 함께 하실 때 더 여유로움이 묻어난 거 같아요. 그런데 현도 씨에겐 음악적 카리스마가 있어서 여유로움과 대비되는 멋이 듀스의 또 다른 스타일이었어요.
"듀스 출범부터 '야 너 없으면 나 안 돼. 너가 있어야 돼'라면서 성재를 끌어들였어요. 전 음악적 고집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안 물어봤거든요. 하지만 성재에겐 '어떤 곡을 타이틀로 할까' 같은 질문을 포함해 자주 물어봤어요. 둘이서 애기해서 OK하면 그걸로 밀고 나갔죠. 21세 강남 청년들이 뭘 알았겠어요. 지들끼리 잘난 줄만 알고 겁 없이 까불었던 거죠. 그 철없던 시절을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 우리 모습이 마치 조카처럼 느껴져요. '얘네들 참 용감했네' '세상 무서운 줄 몰랐네'라는 생각에 기특하기도 하고요. 하하. 그런데 우리도 통제가 안 됐지만 당시 제작자도 경험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1집, 2집, 3집 만들고 탐구하면서 다들 조금씩 늘었던 거 같아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수많은 명곡 중 '여름 안에서'도 최고의 노래로 뽑으셨더라구요.
"개인적으로는 음악이 다 감사해요. 결과에 대해서 회자되는 것은 더 감사하죠. 다만 '이 음악은 왜 이렇게 만들었지'라고 후회하는 노래도 있죠. 그런 부분들에 대해선 제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해요. 그런데 '여름 안에서'는 상징적인 시즌 송이 됐잖아요. 수준 높은 노래가 아닐지라도, 세월을 넘어서 대중이 좋아해주는 노래니까 감사함을 담아서 그 곡을 꼽은 거죠. 성재가 '우리도 어려운 것만 하지 말고 대중적인 거 하나 하자'고 말했고, 그럼 '보여줄게. 그런 곡은 금방 써' 해서 만든 곡이에요. '여름 안에서'가 실린 앨범(2.5집 '리듬 라이트 비트 블랙(RHYTHM LIGHT BEAT BLACK')에 밝은 노래는 그 곡밖에 없어요."
-'여름 안에서'가 밝은 템포의 곡이기는 하지만 상당수 대중은 슬픈 노래로 기억해요.
"이후엔 나온 이야기, 정서가 결합된 거죠. '여름 안에서'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은 저희가 활동하면서 제일 즐거웠던 순간 중 하나였어요. 이 촬영을 핑계로 피서를 갔거든요. 듀스로 활동하면서, 딱 한 번 우리끼리 놀러 간 건데 유일한 휴식이었어요. 근데 이 앨범은 여름이 아닌 가을(9월)에 발매됐어요. 바빠서 한창 여름일 때는 못 냈습니다. 그래서 활동을 못 했어요. 근데 다음 해부터 '불러달라'는 요청이 계속 들어오는 거예요. '여름 안에서'는 자생(自生)한 노래죠."
-'리듬 라이트 비트 블랙'은 당시엔 드물던 리믹스 앨범입니다. 2.5집이기도 했죠.
"당시엔 인터미션 앨범이란 개념이 없었어요. 더구나 우리나라에 싱글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때였어요. 싱글처럼 여러 버전을 내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서 인터미션 앨범이라고 칭했어요. '히트곡들을 어렵게, 대중성 없게 한번 만들어보자'는 마음에 하고 싶은 대로 했죠. '이렇게 하면 장사가 되겠어'라는 제작자들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나를 돌아봐'도 이렇게 깊어질 수 있다면서 저희 식으로 바꾼 거죠."
-정말 '굴레를 벗어나'였네요.
"재미있게 말하면 '아티스트병'에 걸렸던 거죠. 아울러 지금은 팀 로고도 잘 브랜딩이 돼 있잖아요. 당시 그런 개념이 없었을 때 저희는 듀스 로고, 심볼을 만들었어요. 지금도 그것들을 브랜딩으로 잘 사용하고 있다보니까, '우리가 '선견지명이 있었네' 같은 생각을 해요. 그리고 앨범 커버에 가수 얼굴이 안 나온 팀이기도 해요. 당시 보통 1집 커버엔 얼굴이 나와야 하는데, 저희 얼굴이 아예 없어요. 2집은 도안으로 했고, 3집 커버도 제일 기괴한 사진으로 했어요. 3집 커버는 성재가 고른 거예요. 옷도 성재가 입혀줬고요. 저희 앨범 사진은 사진작가 안성진 형이 다 촬영했거든요. 형이 갖고 있는 미공개 필름이 수천 장이 되는데 그것도 후지 필름에서 협찬해주셔서 디지털로 다 복원했어요. 이 사진 중에 안 쓴 B컷이 많아요. 이 중에서 골라볼까 생각 중이에요."
-힙합 쪽으로 듀스가 많이 알려졌지만, 그 안에서도 장르가 정말 다양했잖아요. 개인적으로 '고!고!고!'라는 노래도 좋아해요.
"런디엠시(Run DMC)가 에어로스미스(Aerosmith)와 '워크 디스 웨이(Walk This Way)'를 협업했을 때 정말 놀랐어요. 당시만 해도 '힙합과 록은 안 친해' '헤비메탈이 싫어, 난 힙합이 좋아' 이랬거든요. 그런데 런디엠시는 당대 최고의 랩 아티스트인데, 록을 존중하면서 그걸 섞어낸 것이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저도 언젠간 이런 구성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죠. 제가 당시 제일 멋있다고 생각해서 친해진 록 밴드 형들이 '에이치투오(H2O)'였거든요. '고!고!고!'는 형들이랑 연주하면서 놀듯이 나온 곡이에요."
-그렇게 현도 씨가 새롭게 음악신을 만들어갔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선배들에게 배우면서, 음악적인 활동을 했으면 아마 이런 시도를 못 했을 것 같아요. 겂 없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음악을 했는데, 인생이 그냥 놀이였던 것 같습니다."
-또 구본승 '너 하나만을 위해', 듀오 '지누션'의 '말해줘', 혼성그룹 '룰라'의 '3!4!', 김범수의 '바보 같은 내게' 등 다른 가수들의 대표곡도 만든 뛰어난 프로듀서이기도 하시잖아요. 유명 화가가 마치 화풍을 보유하듯 현도 씨도 곡마다 정말 다른데, 특유의 인장이 새겨져 있어요. 선명하고 단단한 사운드인데, 가슴 벅찬 아련한 정서를 풍기를 곡들이요. 그런 색채가 나올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때로는 일부러 똑같이 하려고 한 적도 있긴 있어요. 작품자로서 주기가 있었던 거죠. 처음엔 다르게 하고 싶다가 나중에 '이게 내 사운드야. 이거에 소신 있게 갈래' 하다가 그다음에 '나와는 다른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렇게 10년 주기로 도는 것 같아요."
-음악 팬들 사이에선 많이 알려진 이야기지만, '3!4!'는 김성재 씨 빈소를 지켜준 룰라 멤버들이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현도 씨가 우정으로 만들어준 곡이잖아요.
"강호의 의리가 떨어진 지 오래됐는데… 저 혼자만 의리에 탐닉한 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계산적이지 않게 그냥 했죠."
-범수 씨의 '바보 같은 내게'는 현도 씨가 이런 템포의 곡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노래예요.
"듀스 때부터 많은 도움을 줬던 최민혁이라는 형이 있어요. 듀스 1집에 프로듀서로도 이름을 올리고 R.ef도 제작을 했는데, 범수 프로듀싱도 했거든요. '범수가 발라더니까 네 스타일로 듀스풍의 슬로우 곡 하나 써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저도 범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그를 생각하면서 뚝딱 쓴 게 '바보 같은 내게'였죠. '머릿속에서만 들리고, 듀스로는 소화할 수 걸 김범수는 할 수 있다'고 상상한 거죠. 키도 많이 올렸고요. 제가 만든 곡 중에 머릿속에서보다 결과물이 더 잘 나온 노래가 몇 개 있는데, '바보 같은 내게'가 그 중 한 곡이에요."
-후배 가수들 중에 휘성 씨와도 친분이 있으셨잖아요.
"휘성이도 엄청난 듀스 팬이었어요.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 봤거든요. 그때도 참 건강하고 멋진 모습이었는데…. 제가 피처링도 부탁했어요. '무조건 해야죠'라고 답을 줬어요. 중국 출장 갔다오면 다시 연락 하자고 했는데, 전화가 안 되더라고요. 그리고 기사를 봤는데… 놀랐어요."
-그런 소식은 매번 충격이 크고 절대 적응이 안 될 거 같아요.
"진짜 먼저 간 사람만 억울하죠. 참 아깝습니다."
-현도 씨가 프로듀싱했던 아이돌 그룹 '디베이스'도 참 멋진 그룹이었는데요.
"반응이 좋았고 꽤 떴어요. 근데 당시 견제가 심했어요."
-듀스는 댄서의 위상을 높여준 선구자 격의 팀이기도 해요.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 시리즈를 보면서 감회가 남달랐을 거 같아요.
"스우파가 잘 되는 걸 보면서, 남 일 같지 않고 내 일처럼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춤은 당연히 그것만으로 무대를 완성할 수 있는 하나의 예술이거든요. 그걸 빛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할지언정 그간 대우는 정말 말도 안 됐습니다."
-듀스의 '나를 돌아봐'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삽입돼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매기 강 감독님이 'K-팝 아이돌이 시작되기 전 뿌리는 이거다'라는 걸 이스터 에그처럼 넣고 싶으셨나 봐요. 기획 단계일 때 '비밀 서약'의 내용으로 해서 계약서가 왔어요. 그 이후로 1년 지나서 공개가 된 거예요. 당시엔 영문도 몰랐고 무슨 스토리인지도 몰랐어요. 넷플릭스 제작 과정이 철저하더라고요."
-K-팝의 시작은 'H.O.T.'지만 사실상 뿌리는 듀스, 서태지와 아이들이잖아요.
"(H.O.T.의 메인 보컬인) 강타는 지금도 저랑 제일 막역한 사이인데요. 며칠 전에도 카톡이 왔어요. 난데 없이 '형님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하하. 제가 '사자후'라는 콘서트를 할 때 1부 게스트가 '영턱스 클럽'이었고, 2부가 H.O.T.였는데 그 때가 H.O.T.가 한창 뜰 때였어요. 강타가 '밤새면서 형들 콘서트 보고 그랬는데 제가 형 옆에서 무대를 서는 게 꿈 같아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당시 '다음엔 너네가 짱 먹을 거야'라고 했는데 실제 그렇게 됐어요. 강타는 여전히 본인이 이현도 성덕이라고 얘기를 하고 다녀요. 전 오히려 그 친구가 괜찮다고 생각을 하고요."
-현재 K-팝에 대한 새로운 고민 중이시잖아요. 새로 세우신 글로벌 뮤직·IP·테크 기업 와이드 컴퍼니는 어떤 회사인가요?(이곳은 12월31일까지 전 세계 K-팝 아이돌 지망생들을 상대로 글로벌 오디션을 연다.)
"공연기획, IT와 AI 관련 일을 하고 있고 아이돌 제작도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핵심 인물은 저를 포함 세 명이에요. SM USA 프로듀싱 본부 디렉터를 역임한 글로벌 음악 전략가이자 듀스에 대해 존중심이 큰 데이비드 최(David Choi)가 저랑 공동 대표를 맡고 있고요. 위버스를 같이 만든 하이브(HYBE) 전 CTO인 서우석 비마이프렌즈(BeMyFriends) 창립자가 와이드의 총괄 고문을 맡고 있죠."
-이현도 프로듀싱의 K-팝은 정말 다를 거 같습니다.
"총괄 프로듀서로서 저도 작품에 참여하지만 잘나가는 K-팝 프로듀서들, 작곡가들을 규합할 수 있는 라인이 제가 되니까요. 어디에 내놔도 K-팝의 프라이드를 느낄 수 있는 음악과 팀을 만들 수 있죠. 후배 댄서들도 현재 최고의 K-팝 안무가가 돼 있는데 그 친구들이 안무를 맡을 거예요."
-K-팝의 뿌리인 이현도 씨를 중심으로 K-팝 전문가들이 규합되는 거네요.
"6인조 보이그룹을 먼저 생각하고 있어요. 제 DNA도 물론 들어가지만 지금의 K-팝 신에 어필하는 포인트를 중심으로 잡고 있어요. 남성미 넘치는 멤버와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멤버들을 합쳐서 팀을 내놓을 건데, 색깔별로 유닛 활동도 생각하고 있고요. 독특한 개성의 팀이 나올 겁니다. 거기에 2인조로 무대를 채웠던 듀스엔 다름이 하나로 합쳐져 있는 임팩트가 있는데, 거기에 대한 향수도 어떻게 하면 녹일까 고민 중입니다."
-이현도 씨의 K-팝 그룹이 나오면 K-팝 신에 새로운 긴장감이 생길 거 같은데요.
"그런 시선엔 동의하지 않아요. 잘 되는 흐름이 생기면, 꼭 반대 시선에서 이슈화시키려는 흐름이 생기는 거 같거든요. K-팝이 잘 되자 한 쪽에선 K-팝이 위기라는 얘기가 나왔잖아요. 전 K-팝이 위기였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해 주지 않았는데 민간 영역에서 자생한 거 잖아요. 누가 도와줘서 잘 된 건가요? 후배들이 열심히 잘 해서 잘 된 거죠. 그러면 기특하다고 더 칭찬을 해줘야죠."
-그렇다면 현도 씨가 정의하는 K-팝이 있나요?
"K-팝의 범위가 넓어지고 시장도 커져서 K-팝의 이미지를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데 이런 움직임은 있다고 봐요. 해외 작곡가들만 곡을 만들었을 때 그것이 K-팝인가라는 생각은 있어요. 지금 K-팝의 위상이 높아져서 한국에서 송캠프를 열면, 외국에서 다 날아오거든요. 근데 K-팝 그룹이 유명해지면 초반에 팀의 곡을 쓰던 한국 작곡가가 더 이상 곡을 쓰지 않은 흐름이 있어요. 물론 한국 국적의 사람이 만든 것만 K-팝이라고 주장하는 건 이상해요. 다만 곡을 만드는 주최자는 한국이어야 한다는 거죠. 한국이라는 로컬에서 양산된 게 '진짜 K-팝'이라고 불려야 하잖아요. 싸이 '강남스타일'이 그 예죠. 즉 제 말은 한국의 음악과 문화가 세계 수준의 문화와 동등한 레벨이 된 만큼, 우리 작곡가들에 대한 자부심도 갖자는 거죠. K-팝 시장이 커질수록 좀 더 재능 있는 한국 작곡가들의 곡이 더 많이 택해지면 좋겠어요."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