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은 반도체 호황과 정부의 전략적 지원으로 고속 성장세를 보였지만, 한국은 경기 부진과 미흡한 산업정책으로 상대적으로 성장세가 주춤하며 대조를 이룬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재 육성과 인프라 확충, 인공지능(AI) 반도체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고 제언했다.
14일 기획재정부와 대만 통계청 등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7430달러(약 5217만7420원)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 대만은 3만8066달러로 추정돼 한국을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달 22일 우리 정부가 내놓은 명목 GDP 성장률 전망치(3.2%)와 이달 10일 대만 통계청이 발표한 1인당 GDP 전망치를 단순 비교한 결과다.
한국은 2003년 처음으로 대만을 제치고 1인당 GDP 우위를 차지한 뒤 줄곧 앞서왔다. 2018년에는 양국 격차가 1만달러 가까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한국의 성장세 둔화와 대만의 추격으로 간격은 빠르게 좁혀졌고, 지난해에는 한국(3만5129달러)과 대만(3만3437달러)이 불과 1600달러 차이로 붙었다.
대만의 올해 2분기 실질 GDP는 전년 동기 대비 8.01% 증가하며 202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대만 통계청은 연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10%에서 4.45%로 상향 조정했다.
이 같은 대만의 성장 배경엔 'AI 반도체 호황'이 자리하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를 비롯한 반도체 수출이 글로벌 AI 투자 확대의 직격 수혜를 입은 것이다.
여기에 정보통신 장비·전자제품 수출도 늘고, 민간 소비가 회복되면서 내수도 성장세를 뒷받침했다.
반면 한국은 사정이 달랐다. 2분기 실질 GDP는 전년 동기 대비 0.6% 증가에 그치며 대만과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주요 원인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인상 조치로 인한 수출 둔화 우려 ▲건설투자 위축 ▲취약 계층 중심의 고용 불안정 등이 꼽힌다. 내수는 일부 회복 조짐을 보였지만, 전체 경제를 끌어올리기엔 힘이 부족했다.
특히 대만의 반도체 주도 성장은 수십 년간 이어진 정부의 산업정책이 결실을 맺은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대만은 1980년대부터 반도체를 국가 핵심 산업으로 지정해 세제 혜택·R&D·인프라를 집중 지원했고, 최근에는 첨단 공정 연구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왔다"며 "인재 양성·해외 인력 유치, 미국·일본과의 공급망 협력 강화 등도 성장세를 뒷받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종환 교수는 "반면 한국은 반도체 비중이 큰 구조에도 정책 불확실성과 투자 부진, 고용 취약성 등으로 경쟁국 대비 성장 모멘텀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며 "앞으로 AI 반도체가 세상을 휩쓸 것으로 보이는데 TSMC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은 반면, 한국은 인재 쏠림 현상으로 의대에 우수 인력이 집중되면서 반도체 인력 공급이 취약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대만은 내년 1인당 GDP가 4만1019달러를 기록해 사상 처음 4만달러 고지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은 내년에도 3만8947달러에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
이종환 교수는 "반도체는 민간 기업만의 영역이 아니라 국가 간 보이지 않는 전쟁이 된 만큼 정부의 역할이 훨씬 커졌다"며 "전력·공업용수 등 인프라를 미리 확보하고, AI 반도체 투자와 전략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1인당 GDP는 나라 경제의 '국민 평균 부가가치 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다만 이는 '평균값'이기 때문에 실제 개인의 소득과는 차이가 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