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대 톱배우 사로잡은 무명 배우의 순정…최불암·김민자 56년 러브스토리 '정동마님' 보고 반해 방송국 매점서 직진한 20대집안 반대 딛고 맺은 백년가약 아내의 양보로 일군 '국민 아버지' 뉴시스 |
| 2026년 10월 30일(금) 1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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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 방송국 매점에서 당대 스타였던 여배우의 찻값을 불쑥 계산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던 무명 배우의 이름 석 자. 29일 87세를 일기로 별세한 배우 최불암과 그의 아내 김민자의 56년 동행은, 결핍투성이였던 청년의 삶을 '국민 아버지'로 일궈낸 배려와 신뢰의 궤적이었다.
인연의 시작은 남산 국립극장 앞 빵집이었다. 연출을 지망하다 노역 전문 배우로 무대에 서며 미래가 불투명했던 최불암은 "눈이 크고 지적인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친구에게 털어놨다. "KBS 드라마 '정동마님'을 보라"는 말에 빵집 흑백 텔레비전을 올려다본 순간,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배우 김민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963년 KBS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이미 인기를 누리던 김민자를 마음에 품은 그는,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해 방송국으로 적을 옮겼다.
첫 만남은 서툴렀지만 분명했다. 김민자가 점심시간마다 매점에서 빵과 차를 즐긴다는 사실을 알고 지켜보던 최불암은, 그녀가 일어서려 하자 카운터로 가 찻값을 먼저 계산했다. 당황한 김민자가 "누구신데 찻값을 내느냐"고 묻자 "나 최불암이요"라는 짧은 인사만 남기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김민자 역시 연극 '따라지의 향연'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보이던 최불암의 연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1968년 국립극단 연극 '환절기'에 함께 출연하며 자연스레 연인으로 발전했다.
결혼에 이르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최불암 스스로 "결격 사유만 다섯 가지였다"고 자조했듯, 그는 홀어머니를 모시는 외아들에 주머니는 텅 빈 연극배우였다. 명동 주점 '은성'의 곤궁한 형편까지 더해져 인기 여배우였던 김민자 집안의 반대는 완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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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돌린 세상 속에서 손을 잡아준 것은 김민자의 결단이었다. 김민자는 훗날 "집안 반대가 심했지만 내가 놓아버리면 이 사람이 위험한 길로 빠지거나 잘못될 것 같은 책임감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사내의 빈자리를 모성애와 연민으로 감싸 안은 김민자는 4년 열애 끝에 1970년 그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결혼 후 김민자는 무대 뒤편을 택했다. 백상예술대상과 방송대상을 수상할 만큼 기량이 뛰어났음에도 "두 사람 모두 무대에서 날뛰면 가정이 유지될 수 없다. 당신이 열심히 일할 때 내가 집을 지키겠다"며 스스로 활동을 줄였다. 최불암이 '수사반장'의 박 반장과 '전원일기'의 김 회장으로 한국 현대사의 상징이 되는 동안, 그 빛을 떠받친 것은 아내의 양보였다. 시청자들의 오해로 김혜자와의 부부 착시가 생길 때마다 최불암이 "평생 나를 위해 빛을 잃어준 아내에게 가장 미안하고 고맙다"고 밝힌 배경이다.
노년의 일상은 담백했다. 오전 6시면 함께 눈을 떠 차를 마시며 여명을 맞았고, 부엌에서 밥을 짓는 아내 곁에서 돋보기를 쓰고 신문을 소리 내 읽어주는 것이 남편의 낙이었다.
부부의 온기는 담장 밖으로도 이어졌다. 최불암이 '전원일기' 속 금동이 입양 연기 후 부끄러움을 느껴 40여 년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으로 헌신했듯, 김민자 역시 2004년부터 사단법인 '사랑의 달팽이' 회장을 맡아 청각장애 아동의 인공 와우 수술과 재활을 돕는 데 반평생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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