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 다시 묻다] 투기 색출에서 관행 구제까지…농지 전수조사 7개월의 진통

李대통령 2월 전수조사 지시…4월 당정 조사계획 발표전체 27%·284만 필지 위반 의심…농지 처분 우려 확산농민 반발에 당정 수습…송미령 장관 현장 찾아 진화정부 "투기 아니면 처분 안해"…특별법으로 법제화 추진

뉴시스
2026년 10월 09일(금) 11:35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농지 전수조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나이스데이] 투기 근절과 '경자유전(耕자有田)' 원칙 확립을 내걸고 대대적으로 시작된 전국 농지 전수조사가 농지 가격 하락과 강제 처분을 우려하는 농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며 심각한 진통을 겪고 있다.  정부는 명백한 투기 목적이 아닌 농촌 현장의 관행적 농지법 위반은 처분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하고 특별법 제정을 예고하며 민심 수습에 나섰다.

9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농지 전수조사는 지난 2월24일 국무회의에서 나온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서 비롯됐다.

이 대통령은 당시 "우리나라 농지 관리가 너무 엉망이다. 투기 대상이 돼 버렸다"며 "헌법에 '경자유전'이라 써놓고는 온갖 방식으로 전부 위헌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필요하면 인력을 대규모로 조직해서 전수조사하고 강제 매각 명령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해서 보고하라"고 했다.

이후 당정은 4월1일 전국 농지를 대상으로 2년에 걸친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는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국비 588억원을 투입해 1996년 이후 소유권이 변경된 농지 약 115만㏊를 우선 조사하고, 내년에는 1996년 이전 취득 농지까지 조사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윤원습 농림축산식품부 농업정책관은 "이번 전수조사의 원칙은 투기 근절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비농업인들이 소유해 음성적인 임대차나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 목적 보유가 많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행정정보와 드론·항공사진, 인공지능(AI) 분석 등을 활용해 위법 의심 농지를 선별하고 현장 심층조사를 통해 실제 경작 여부 등을 확인하기로 했다.

특히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무단 휴경이나 불법 임대차가 적발되면 유예기간 없이 처분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농지법 개정도 추진했다.

284만 필지 '위반 의심'…농촌에 번진 처분 불안

그러나 전수조사가 본격화하면서 농촌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정부가 7월 말까지 진행한 기본조사 결과, 284만 필지가 불법 임대차나 무단 휴경 등 농지법 위반 의심 농지로 분류됐다. 이는 정부가 발표한 기본조사 대상의 27%에 달하는 규모다.

실제 위법 여부가 확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농촌에서는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농지 이용까지 처분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확산했다.

농촌에서는 고령으로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워 이웃이나 친척에게 농지를 맡기거나 구두로 임대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상속농지를 직접 경작하지 못하거나 맹지·급경사지 등 영농이 어려운 농지를 휴경하는 경우도 있다.

현행 농지법상 임대차 허용 요건 등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들 농지까지 처분 대상에 포함될 경우 농촌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농지법 위반으로 처분의무가 부과된 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처분명령과 이행강제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불안을 키웠다.

여기에 농지 거래가 위축되고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겹쳤다. 일부 농민들은 농지를 매물로 내놓아도 매수자를 찾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다만 농식품부는 지난달 16일 농지 거래량이 전년 동기보다 2.2% 증가했고, 농지 실거래가 하락률도 전년 동기 -5.3%에서 올해 -4.4%로 둔화했다는 통계를 제시하며 전수조사로 농지 시장이 위축됐다는 주장에 반박했다.

농지법 위반이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처분명령이 내려지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현장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윤준병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농지 전수조사 추진방향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농민 반발에 당정 수습…宋 장관 현장 찾아 진화

농촌의 반발이 커지자 여당에서도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17일 "조사 결과는 당초 목적과 같이 명백한 농지투기행위 처벌에 활용하고, 농촌 현장의 일상적인 농지 이용행위에 따른 경미한 법 위반은 계도와 제도 개선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에 당정은 같은 달 21일 협의를 열고 투기 목적의 농지 취득이나 중대한 위반에는 엄정 대응하되, 농촌 관행 등으로 발생한 경미한 위반은 정상화하기로 했다.

관행적인 불법 임대차 농지를 농지은행에 위탁하거나 자진정비하는 경우 처분을 유예하고, 불법 임대차·전용 등을 정상화하기 위한 특별조치법도 추진하기로 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22일 충남 홍성과 30일 전북 남원을 잇달아 방문해 전수조사가 농업인을 적발하거나 농지를 처분하기 위한 조사가 아니라며 현장 불안 해소에 나섰다.

그러나 지난 7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정부의 설명 부족으로 농민들의 불안이 커졌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송 장관은 "대통령께서 굉장히 좋은 취지로 농지조사 필요성을 얘기해주셨고,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세심히 준비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저 장관의 불찰"이라며 "현장에 계신 농업인들께 혼란을 드린 점을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진주=뉴시스]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농지전수조사.(사진=경남농관원 제공)[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정부 "투기 아니면 처분 안해"…특별법으로 법제화 추진

결국 정부는 지난 8일 후속조치를 발표하고, 명백한 투기가 아니라면 이번 조사 결과를 근거로 처분 절차를 진행하지 않도록 특별조치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농지은행 위탁이나 자진정비 등을 통한 정상화를 강조했다면, 이번에는 이러한 조치 여부와 관계없이 투기가 아닌 농지는 처분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송 장관은 "투기가 아닌 일반적인 사안은 이번 조사 결과를 근거로 해서 농지법상의 처분 절차를 진행하지 않는 방향으로 국회와 협의하겠다"며 "농지은행 위탁 여부와 관계없이 일반적인 사안은 처분 절차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중점적으로 판단할 투기 행위도 세 가지 유형으로 구체화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영농계획서를 제출해 농지를 취득한 뒤 방치·임대한 경우 ▲시세 차익을 목적으로 허위 영농계획서를 제출해 농지 지분을 취득하고 방치·임대한 경우 ▲농업법인을 이용해 농지를 취득한 뒤 분할매매나 임대로 부동산 수익을 올리는 경우다.

반면 상속농지의 휴경이나 소유상한 초과, 고령으로 인한 관행적 임대차, 맹지 등 영농이 어려운 농지의 휴경은 명백한 투기가 아니라면 처분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다. 종중·사찰 소유 농지나 미등기 상속농지 등도 마찬가지다.

농지 전수조사 추진 논의가 시작된 지 7개월여 만에 정부가 처분 제외 원칙을 법적으로 보장하겠다는 대책까지 내놓았지만, 실제 현장의 불안을 해소하기까지는 과제가 여전하다.

특히 투기 여부를 판단할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과거 농지법 위반으로 이미 처분명령을 받은 농지와의 형평성 문제도 풀어야 한다.

송 장관은 기존 처분명령을 받은 농지에도 특별법상 특례를 적용할지에 대해 "아직 결정하진 못했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의논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세종=뉴시스] 배훈식 기자 =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농지 전수조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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