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광야에 선 이창동 새 경지를 열다 '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 새 영화 '가능한 사랑' 리뷰

뉴시스
2026년 09월 23일(수) 13:18
[나이스데이] 이창동 감독 새 영화 '가능한 사랑'(9월23일 공개)은 일종의 고백이다. 인간사와 세상사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게 도무지 쉽지 않다는 실토. 그래서 이 작품엔 판단이 없고, 규정이 없다. 대체로 불명확하고 불확실하기에 러닝타임 164분엔 내내 긴장이 서린다. 거북하고 불쾌하다.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건 말하지 않겠다는 것. 복잡하고 난해한 것은 복잡하고 난해하게 얘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건 예술가 이창동의 태도이자 윤리다. '정확한 사랑'에서 이창동은 바로 그 태도와 윤리를 가지고 심연을 들여다보는 대신 광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환난의 세계 한가운데서 묻고 또 묻는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건 가능한 일인가.'

해고노동자 호석(설경구)과 아내 미옥(전도연)이 다큐멘터리 연출가 예지(조여정)와 그의 남편 상우(조인성)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가능한 사랑'은 사회학이자 인문학이며 경제학이고 교육학이며 결국 영화학이고 윤리학이다. 이 작품은 두 부부, 네 사람을 통해 자본·노동·계급을, 성장·고용·분배를, 욕망·고통·이해를, 공감·사랑·자유를, 예술의 역할과 본질과 한계를 아우른다. 이 키워드엔 가치판단이 없다. 선악도 호오도 없다. 단정하지도 않는다. 유일무이한 단 하나의 인간들이면서 동시에 뻔한 인간들을, 단 하나의 삶의 순간이면서 뻔한 삶의 순간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 이 영화는 모든 걸 동원하려는 것 같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믿으며 애를 쓰는 것만 같다.



그 노력은 뜨거운 감성에 기대는 게 아니라 차가운 이성을 동원한다. '가능한 사랑'은 이 감독 전작과 비교해 더 명확한 구조로 인간과 세계를 향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려 한다. 이 작품은 ①노동자 부부-자본가 부부라는 단순 구도를 넘어 ②해고노동자-정규직노동자-중산층예술가-최상층사업가, ③고통 받는 자-고통을 지켜보는 자-고통을 이해해보려는 자-고통에 관심 없는 자의 구도다. 또 ④욕망을 거세당한 자-욕망하는 자-욕망을 채워가는 자-욕망할 필요가 없는 자, ⑤사랑을 빼앗긴 자-사랑이 필요한 자-사랑해보려는 자-사랑 받는 자의 구도다. 이 감독은 이들을 같은 높이에 둔 채 심리적·물리적으로 거리를 좁히고 넓히길 반복하며 삶에 내재한 위화감을 시종일관 풍겨댄다.

'가능한 사랑'은 가장 약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존재를 대책 없이 옹호하거나 가장 강한 곳에 있는 것 같은 존재를 일방적으로 매도하지 않는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자본에 분노하고 있을 것만 같은 호석이 미워하는 건 오히려 함께 투쟁한 동지들이다. 정규직 미옥은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는 안중에 없다. 노동과 노동자 현실에 관해 얘기하겠다는 예지는 상상 속 그럴싸한 그림을 추구하는 듯하다. 상우는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인 동시에 자신이 가진 권력을 능히 쓰는 사람이다. 매 순간 결론 내리는 걸 유보하는 것만 같은 이 영화는 쉽게 결론 내려진 곳에서는 인간과 삶과 세계의 진실을 볼 수 없다고 얘기하는 순간 유일하게 단호해진다.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가능한 사랑'은 앞선 이창동 필모그래피를 일일이 복습해가며 그의 영화 세계를 개척한다. 자본에 의해 죽은 호석은 성장에 휩쓸린 막동과 다르지 않다(초록물고기). 호석의 트라우마는 곧 영호의 트라우마다(박하사탕). 노동자 호석과 미옥의 관계는 사회 최약자였던 종두와 공주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오아시스). 호석의 발악과 이를 지켜보는 미옥의 눈물은 미쳐버린 신애와 할 수 있는 게 없는 종찬 같다(밀양). 예지의 다큐멘터리는 미자의 시다(시). 두 부부, 네 사람에 담긴 저 삶의 난감함은 태웠다는데 태워진 적 없는 비닐하우스로 표현된 적 있다(버닝). 그리고 이 모든 영화를 만든 이창동은 이제 직접 극 안으로 침입해 '가능한 사랑'을, 그의 작품 세계를 다른 차원으로 옮겨 가려 한다.

말하자면 이건 영화를, 예술을, 이창동 자신을 향한 통렬한 자기 성찰이다. 예지는 이창동의 분신. 예지의 한계는 이창동의 한계로 보이고, 예지의 진심은 이창동의 진심으로 보인다. 카메라엔 무얼 담을 수 있는가, 무얼 담아야 하는가. 카메라는 어디까지 진입할 수 있나, 어디까지 진입해야 하나. 카메라를 언제 들고, 언제 내려놔야 하는가. 고작 카메라 따위에 인간과 삶의 진실이 담길 수 있단 말인가. '가능한 사랑'은 세계와 카메라 사이에 선 예지의 온갖 행위를 짚어가며 소위 리얼리즘을 극한으로 밀어붙여온 이창동이란 예술가의 세계를 전면 재검토한다. 예지는 "메소드 연기 잘하고 있다"는 상우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말한다. "난 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는 거야."



이 윤리학 앞에서 '가능한 사랑'은 가능한 정직하고 진솔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 작품은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가 새로 만든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됐으나 자진 취하했다.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하기도 했고, 신진 연출가 기회를 이 감독이 가져갔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후 '가능한 사랑'은 글로벌 거대 자본 넷플릭스 투자로 완성됐다. 한국영화예술 정점에 있는 감독의 신작이 전 세계 최대 영상 엔터테인먼트 플랫폼과 합작해 자본과 노동과 계급을 주요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든 것. 이 아이러니를 이 감독은 '가능한 사랑'에서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러니까 이건 인간과 삶의 진실 그리고 사랑에 관해 말하기 위해 나부터 온전히 진실해지겠다는 다짐이다.

'가능한 사랑'은 분명 이창동이란 예술가의 위력을 보여주는 작품이겠지만, 위대한 배우들 덕분에 완성된 영화이기도 하다. 20대에 '접속', 30대에 '밀양', 40대에 '무뢰한'이 전도연의 대표작이었다면, '가능한 사랑'은 50대 전도연의 대표작이 됐다. 극한까지 벼려진 전도연의 섬세함은 또 한 번 관객을 감탄케 한다. 최근 주로 장르물에서 활약해온 설경구는 우리가 사랑했던 그 모습, 빈티지 설경구로 돌아와 특유의 지독함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조여정은 왜 한국 최고 감독들이 그를 그렇게 찾는지 다시 한 번 증명한다. '가능한 사랑'을 포함해 올해 가장 주목 받은 영화 3편에 모두 출연한 조인성은 이번 작품을 통해 그의 경력 정점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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