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 사장 '강심장' 만들어준 한국…"체불액 줘도 처벌해야"

10월부터 상습체불근절법 시행…'3배' 징벌적손배 가능해져
2회 이상 체불전과 후 다시 체불 시 반의사불벌죄 적용 안 돼
전문가들 "제때 월급 주는 게 바보…반의사불벌죄 폐지해야"
실형 선고도 드물어…"체불이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 만들어야"
근로감독관 1년에 체불사건만 89건…수사 강화 위해 증원 필요

뉴시스
2025년 06월 02일(월) 10:44
[나이스데이] 지난해 임금체불액이 사상 처음으로 2조원을 넘고 올해 1분기에도 6043억원을 기록하는 등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10월부터는 체불 사업주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지만, 직접적인 처벌을 더 강화하고 임금체불 사건을 수사하는 근로감독관의 인력을 더 보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른바 '상습체불근절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오는 10월 23일부터 시행된다.

이는 임금체불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데 따라, 직전연도 1년간 3개월분 임금 이상의 체불을 저지르거나 5회 이상 체불하고 체불총액이 3000만원 이상인 사업주를 '상습체불 사업주'로 규정하고 제재를 높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용부는 매년 상습체불 사업주를 지정해 체불 자료를 종합신용정보집중기관에 제공하고 국가나 자치단체, 공공기관에서 지원하는 보조금이나 지원금 신청에서 제한하도록 할 예정이다.

또 현재 퇴직자에게만 적용되는 미지급 임금에 대한 지연이자(100분의 20)가 재직 근로자에게도 적용되며, 1년동안 3개월 이상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에는 징벌적 손해배상 개념으로 체불액의 3배까지 청구할 수 있게 된다.

이 밖에도 2회 이상 형사처벌을 받은 명단공개 사업주가 다시 임금을 체벌하는 경우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되지 않으며 명단이 공개된 체불사업주의 출국금지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일선 근로감독관들은 근본적으로 '임금체불은 범죄'라는 인식을 만들기 위해 처벌 강화가 더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박성우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일단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이 없고, 법원에서도 단순 채무관계 정도로 본다"며 "법에서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규정하는 체불액의 한 10%만 벌금형으로 나오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근로기준법상 임금체불죄만 유일하게 반의사불벌죄인데, 70~80%만 받는 선에서 합의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며 "피해자가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넣고 조사를 받으면 3개월 걸리기 때문에 그때 가서 지급해도 불이익이 없다. 이윤을 추구하는 사용자 입장에서 월급을 제때 지급하는 것보다 이게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도 "임금을 한 번이라도 체불해 본 사용자는 손해볼 게 전혀 없다는 것을 안다"며 "임금체불을 했으면 체불액을 주더라도 처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벌금을 추가로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돈을 다 줄 거라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3년까지만 인정되는 임금채권의 소멸시효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 운영위원은 "피해자는 먹고살아야 하니까, 일해야 하니까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잘 못한다"며 "나중에 여유가 생겨서 체불을 진정하려고 하면 3년이 지난 경우가 많다. 소멸시효 기간 자체를 없애거나 최소 5년으로는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팔 국적 외국인 근로자를 감금 폭행하고 임금체불한 혐의를 받는 40대 돼지농장 사업주를 구속한 목포지청 소속 민충기 근로감독관은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기소를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에 기소 전에 임금체불을 해결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근로기준법 위반은 실형을 살지 않는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양형이 가장 1차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현재 임금체불의 양형기준은 1억원 이상 체불 시 가중 처벌 요소가 있을 때 최대 2년6개월까지다. 2016년 7월 시행 이후 큰 변화 없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은 소액 벌금형에 그쳐, 실형이 선고되는 비율도 현저히 적다.

이에 김문수 전 고용부 장관이 이상원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양형기준 상향을 요청하기도 했다. 고액 체불에 대해 집행유예가 선고되지 않도록 '집행유예 부정적 주요 참작 사유'에 ▲악의적인 미지급 체불인 경우 ▲근로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한 경우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 ▲동종 전과 등을 포함해달라는 요청도 했다.

다만 아직까지 실질적인 양형 상향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고용부는 지속적으로 양형위원회와 양형 상향을 상의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수사 단계에서 조사가 효율적으로 이뤄지도록 일선 근로감독관 수를 늘리고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전국의 근로감독관은 2200명(정원 기준). 지난해 말 일선 고용노동지청에 접수된 임금체불 사건만 19만4915건(피해 근로자수 28만3212명)으로, 1인당 임금체불 사건만 1년에 89건 수사하는 셈이다.

여기에 최근 늘어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건 등을 합하면 1년에 40여만건의 신고가 일선청으로 들어오는데, 사건을 모두 합하면 근로감독관 1인당 180여건을 맡게 된다. 구속수사 등 강제수사를 섣불리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4월 고용부 통영지청에서 근로자 130명의 임금과 퇴직금 12억4000여만원을 체불한 사업주를 구속했던 임종범 감독관은 1년 수사 끝에야 구속영장을 신청할 수 있었다.

임 감독관은 "청별로 사건 수가 다르겠지만, 당시 제가 20건 정도의 사건을 맡고 있었는데 구속을 처리하면서 40건까지 올라갔었다"며 "과에서 사건 배당을 일부 빼주기는 하지만, 그만큼 다른 사람들한테 부담이 가니까 미안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일선지청에서 근로감독관을 지냈던 A씨는 "고용부 이미지 자체가 실업급여나 내일배움카드 등 일반적인 서비스 행정을 하는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지, 임금체불을 조사한다고 할 때 사업주들이 무섭지도 않아하고, 출석요구에 불응해도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느낀다"며 "진정인들도 밀린 월급을 받는 게 우선이다보니 양 당사자 사이에서 감독관 한 명이 내실있는 조사나 수사를 하기에 상당히 힘든 구조 같다"고 토로했다.

김성희 L-ESG평가연구원 원장은 "임금체불 감독은 악성 세금 탈루자들한테 세금을 걷는 것과 비슷하다"며 "근로감독관들은 임금체불 외에도 다른 노동관계법 조항에 대한 근로감독을 해야 하는데 임금체불 근로감독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 때 근로감독관 수를 늘렸지만 이후에 지속적으로 늘리지는 않았다"며 "임금체불 근절은 어떤 정부든 제대로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근로감독관 증원의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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