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금지' 딜레마…"그걸로 먹고 살아" vs "건강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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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배송 '금지' 딜레마…"그걸로 먹고 살아" vs "건강 지켜야"

택배노조, 국회 사회적대화서 0~5시 '초심야시간대 배송금지' 제안
야간노동, 건강 위험 높여…5년새 배송기사 산재 중 야간 비중 2배↑
쿠팡노조 "전면 금지 반대"…전문가 "다른 야간 일자리로 이동할 것"
정부도 "전면 금지 신중해야"…11시간 연속 휴식 등 관리 방안 검토

[나이스데이] 노동계에서 0시부터 5시까지 심야시간대 배송을 '금지'하자는 주장이 나오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노동자 건강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과 소비자 편익 및 직업선택의 자유를 위해 금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2일 노동계와 국회 등에 따르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조는 지난달 22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출범한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새벽배송 금지를 요청했다.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는 택배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과 과로사 등 산업재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마련됐다. 앞서 지난 2021년에도 두 차례 택배 노동자의 적정 작업 조건 마련 등에 합의한 바 있다.

택배노조는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0시부터 5시까지 '초심야시간대' 배송 금지를 제안했다고 한다.

이들은 논란이 커지자 같은 달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가장 위험한 시간대의 배송업무를 제한해 택배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수면 시간과 건강권을 보장하자는 것"이라며 "밤 12시까지의 새벽배송과 새벽 5시 이후 배송은 계속된다. 특히 아침 일찍 받아야 하는 긴급한 품목에 대해서는 사전 설정 등을 통해 기존처럼 받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야간노동, 뇌·심혈관계질환 높여…10명 중 6명은 "새벽배송 부담 있다"

그동안 장시간노동과 야간노동이 뇌·심혈관계질환 발생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는 꾸준히 나왔다. 이에 국제노동기구(ILO)와 국제보건기구(WHO)는 야간노동자에 대한 정기 건강진단과 주간 일자리 전환 등 보호 조치를 권고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지난해 실시한 '새벽노동으로 인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예방 대책 연구' 보고서에서도 야간노동으로 인한 문제점이 담겨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개년간 택배기사의 산재현황을 보면 2019년 10.1%였던 야간재해자는 2023년 19.6%로 2배 가까이 뛰었다. 재해 형태별로는 뇌심 등 작업 관련 질병과 넘어짐이 많았다.

새벽배송기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자신의 건강상태를 '좋다'고 답한 비율이 30.3%에 불과했다. 이는 우리나라 일반 성인(47.6%)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또 '새벽배송으로 인한 육체 부담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60%였고, 가장 많이 호소한 건강문제는 '눈의 피로(56.4%)'와 '피부문제(39.0%)였다. 아울러 높은 노동강도와 마감시간 준수에 대한 압박감 등도 주요 호소 사항이었다.

택배노조 역시 "야간노동은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고 야간노동과 관련한 국내·외 기준은 '연속 2~3일을 넘지 않는 것'인데 쿠팡은 5~6일씩 계속된다"며 "생체리듬을 파괴해 수면장애, 심혈관질환, 암, 우울증, 자살충동 등 심각한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고 강조했다.

◆'당사자' 쿠팡노조는 "반대"…전문가 "금지 땐 다른 야간노동으로 이동할 것"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쿠팡노동조합은 새벽배송 금지를 반대하고 있다.

정규직 배송기사로 구성된 쿠팡노조는 택배노조 주장에 대해 "지난 10여년간 새벽배송을 통해 국민의 아침 밥상과 아이들의 학교 준비를 책임져왔다"며 "새벽배송은 이제 국민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서비스로 자리잡았고 쿠팡 물류에는 생명과도 같은 핵심 경쟁력 중 하나인데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단순히 야간근로를 줄이자는 주장만으로 새벽배송을 금지하자는 것은 택배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처사"라고 반박했다.

또 0시부터 5시까지 배송을 금지하면 새벽배송을 하던 기사들과 관련 인력이 일자리를 잃고, 오히려 주간에 일이 몰리면서 또다른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전면 금지 실효성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동자들 중에는 새벽배송이나 야간물류에만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주간 일자리가 아닌 다른 야간 일자리로 이동할 것"이라며 "야간노동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전면금지를 한 국가는 어느 곳도 없다"고 했다.

야간배송을 하는 A씨는 "벌이가 나쁘지 않아 만족하면서 일하고 있다"며 "원래 '올빼미' 성향이라 이전에는 대리기사로 일했다.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는데 금지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노동장관 "전면 금지 신중해야…11시간 연속 휴식 부여 검토"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노동부 한 관계자는 "이미 '워킹맘' 등 국민들 사이에서 새벽배송이 널리 자리잡았고, 늦게까지 일하는 자영업자들은 다음날 영업을 위해 새벽배송을 이용하고 있다"며 "전면 금지의 역효과가 너무 크다. 쉽지 않은 문제"라고 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에도 심야배송과 관련한 과로사 문제가 제기됐지만 다양한 이해관계 때문에 금지가 아닌 '제한 권고'에 그쳤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 역시 지난달 30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아직 부처 내에서 논의해보지는 않았지만 제 생각을 물으신다면 신중하게 검토해야 된다고 본다"며 "소비자 입장도 고려해야 되고 여러 가지 조건을 같이 봐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는 그 제도 자체의 취지가 퇴색되지 않도록 하되, 여러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들이 모여져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새벽배송이 과로를 부를 수 있다는 주장과 관련해 새벽배송 기사들에게 '11시간 연속 휴식' 규정을 적용할 가능성은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운송업, 보건업, 기타운송관련서비스업 등에서 근무일과 근무일 사이 11시간 연속 휴식을 의무화하고 있는데, 여기에 새벽배송 업무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김 장관은 "야간노동을 어떻게 규율할 것인가가 제일 중요하고, 야간노동 사이 13시간, 최소 11시간의 휴식을 강제로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