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권력의 언덕은 왜 늘 미끄럽나…강원 정치권에 청구서
검색 입력폼
탑뉴스

[초점]권력의 언덕은 왜 늘 미끄럽나…강원 정치권에 청구서

[나이스데이] 9월16일 밤, 서울중앙지법 남세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권성동 의원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사유는 “증거 인멸 염려”였다. 특검 출범 이후 현역 의원 신병 확보 1호다. 혐의의 핵심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통일교 측으로부터 1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것. 특검은 한국은행 관봉권 사진, 공여자 진술, 문자·다이어리 기재 등을 제시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권성동은 “넥타이만 받았다”며 부인했지만, 차명폰 사용·공범 접촉 시도 등 정황은 ‘증거 인멸 우려’를 뒷받침했다.

그는 과거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에서 무죄를 받아 살아남은 경험이 있다. 그러나 ‘살아남는 법’은 종종 멈출 줄 모르는 습관이 된다.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 때 “9급 갖고 뭘 그러냐”는 언동, 윤석열 대통령의 ‘내부 총질’ 텔레그램 노출 사건은 권력과 가까운 정치 스타일의 위험을 보여줬다. 권력의 언덕에 가까이 선 자는 늘 낭떠러지와 맞닿아 있다.

이번 사건은 그 근접성이 혐의의 동력으로 뒤바뀐 특이점이 있다. 통일교가 요구한 행사 참석·정책 지원, 그 대가로 의심되는 현금 1억원은 ‘정교 유착’의 프레임으로 해석됐다. 법원은 이를 가볍게 보지 않았다. 다만 구속 사유인 “증거 인멸 염려”가 다른 사건에서도 일관되게 적용돼 왔는지 여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구속은 형벌이 아니지만, 현실에서 저울은 여론과 정국에 흔들려왔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곧바로 “야당 말살”을 주장했지만, 이번 사건이 남긴 충격파는 중앙 정치권보다 강원 정치권에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보수 텃밭이라 불린 강원에서 권성동은 상징적 존재였다. 국회 원내대표, 집권세력의 핵심으로 승승장구했지만, 구속이라는 사법적 단죄는 강원 정치의 위상과 신뢰를 동시에 흔들었다.

강원도 일각에서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권성동 측근으로 분류되는 한 당직자는 “5선의 국회의원이 무슨 증거를 인멸하며, 무슨 도주 우려가 있다는 말이냐. 일면식도 없는 인사가 돈을 건넸다고 받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차라리 정치적 사유를 명시했어야 타당했을 것”이라며 이번 구속을 ‘야당 탄압’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옹호론은 강원 민심의 흔들림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권성동의 몰락은 한 개인의 추락을 넘어 강원도 정치권 전반에 드리운 경고장이다. 강원랜드에서 비롯된 오랜 의혹, 중앙 권력과의 밀착 정치, 그리고 통일교와 같은 사적 이해집단과의 유착은 결국 강원 정치가 치러야 할 구조적 비용으로 돌아왔다. 남은 과제는 통일교 자금의 실제 흐름과 사용처를 끝까지 추적해 공적 결정 과정에 사적 이권이 개입했는지 밝히는 일이다. 동시에 “증거 인멸 염려”라는 구속 사유가 다른 사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됐는지 검증하는 것도 필요하다.

권력의 언덕은 언제나 미끄럽다. 이번엔 강원 정치를 대표해온 권성동에게 먼저 청구서가 도착했을 뿐이다.
뉴시스